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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레/N

상냥한 당신에게

haru_FLN 2025. 12. 16. 21:25

 

참 신기한 일이지? 첫인상은 7초면 결정난다는데, 당신은 늘

 

"사귀는 사람 없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손끝에 붙었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흐린 시야 속에서도 이제는 분간하기 쉬운 상대를 바라보며 레이크는 말을 고른다. 누가 질문했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당연히 옆에 있을 존재가 되어서.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구별하고 판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레이크에게, 리완은 그 일부만으로도 쉽게 분간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이 되었다. 부들을 닮은 머리카락이라든지, 생명을 닮은 눈의 색이라든지, 자주 입는 옷이라든지, 타인에게 호감으로 다가올 모든 외형적인 부분을 제쳐두고도 언뜻 드러나는 향이라든가, 단단히 잡아주는 손의 체온이라든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와 모든 행동 방식 자체가 리완이라 구분하도록 만들어줬으니까. 

 

" 저 그렇게 쓰레기로 보였나요?"

 

덕분에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예민한 신경에 기대지 않아도 구별하고 말았다.  키차이가 나는데도 발걸음을 맞춰주고 여전히 부축해주는 손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말을 잇는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묻는 건가 싶어서.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만, 혹여 사귀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싶어 앞서 말했던 것을 망각하고 말하면, 

 

"리완은 생겼어요?"

"제가 그렇게 쓰레기로 보였습니까?"

 

아.

 

" …그건 아닌데." 

 

금방 이러고 마는 것이다. 눈썹이 늘어지며 웃음이 샌다. 가끔 무슨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기분 나빠서 그런 대답을 하는 건 아니겠거니 싶어 잡은 손만 좀 더 고쳐 잡았다. 알기 쉬우면서도 어려워서, 여전히 제 곁에 있는 그의 말을 기다리며 걸음을 옮기는 거다. 원래라면 끌고 다녀야할 지팡이를 잡은 채로. 

 

처음엔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쩌면 흥미로 인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함께 가는 발걸음이 다정인지 흥미인지 다른 것인지, 구별하려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이용하고 싶으면 이용하라고, 쉽게 옆을 내어주며 레이크는 리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인에게 상냥하며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여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활동하기 편했을 이 사람이, 어째서 여러 근거 없는 소문이 도는 제 옆을 자처하는진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면 떠나겠지 싶어서.

 

'함께 하고 싶다면 함께 해도 좋아요, 리완.'

 

좋게 보면 다정했기에 남아 있고, 나쁘게 보면 이용할 가치가 있기에 남아 있겠지, 했다. 파트너라고 명명하긴 했으나 영원하다곤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모험가란 그런 거지, 언제고 떠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는 바람 같은 직업. 수완에 따라 맡는 일도 천차만별이고 남는 사람도 구설도 다양한 활동. 메리엘은 제 활동에 어떤 구설수가 돌아도 상관없었으니 어찌 되든 좋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그걸로 됐으니까, 그걸로 사람이 한 명 더 살았으면, 그걸로 누군가 구원 받았다면 되는 거니까. 이용 당해서 네가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되었으니까.

 

'다만 언제든 떠나도 괜찮아요.'

 

그래, 레이크는 그래서, 그의 첫인상을 단정짓지 않았다.

그저 그의 다정한 파편만을 해석하려 했다. 이용 당하게 될 일이 있더라도, 설령 그가 저를 미워하더라도 레이크는 리완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었다. 애초에 어쩌면, 레이크는 리완이 본인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타인이 그랬듯, 정을 주는 것이 쉬운 만큼 미움을 주는 것 또한 쉬우므로. 

살아온 시간 속에 경험으로 녹아든 것이 있음에도, 이따금 들어오는 다정과 온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까지 익숙해지면 안될텐데, 이는 시간 탓이었을까, 정 때문이었을까, 따뜻해서일까. 공간이 커지면 바다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손 끝에 부딪히거나 닿아오는 온기가 익숙하지 않은데도 거부하지 않은 건 웃음이 새서다. 바다임에도 바람조차 불지 않는 호수를 모방하며 파동을 무시하고 홀로 서있으려 애쓴 과거가 있음에도, 레이크는 리완을 선택했다. 발목이 잠긴 바다를 바라보며, 언젠가 그 안으로 빠져 잠겨 죽을 때가 되기 전까진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 너 자신보다는 세상을 택해. 네 가치는 그정도니까

- 저도 알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끼고 있는 반지는 과거의 약속이자 ….

 

"그건 왜 물어보는 거예요?" 

 

언젠가의 망령을 뒤로 하고 레이크는 여전히 앞으로 걸어간다. 홀로 걸어가는 게 당연하다 싶었던 세상에, 저를 알아봐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 한명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약해진다면 모험가가 되기엔 어려운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으나,  그것이 영원이 아니라면 괜찮겠다며 스스로를 속였다. 

 

레이크 메리엘은 리완, 그러니까 이소원을 아껴주고 싶고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한다. 

레이크 메리엘은, 이소원에게 저를 드러낼 용기가 없다.

레이크 메리엘은 ….

 

"그럼 동거엔 문제 없겠군요." 

"네?" 

 

어쩌면, 그렇기에 레이크는 이소원을 잡을 권리가 없다. 어쩌면 이후에도, 평생도록.  모든 선택권은 리완에게 있으므로. 그럼에도 종종 리완은 레이크를 뒤흔든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싶던 레이크 메리엘은 결국 불안정한 관계에 손을 잡고 바다가 되었다. 손에서 빼지 못한 반지를 영원토록 기억하고 있을 거면서 리완을 곁에 두길 택했다. 파트너를 두길 택했다. 어리광을 받아주길 택했다. 잡을 권리도, 잡을만한 주제도 못 될테니 그 자리에 있는 대신, 

 

"아 ."
"싫습니까?"
"아뇨, 좋죠." 

 

함께 있는 한 원하는 것을 내어주길 택했다. 

그 의사 속에 제 감정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판단하지 않았던 처음부터 함께 하고 있는 지금까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제 마음 또한 그러고 싶어서겠지. 이게 아마 레이크 메리엘로서의 최대한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니 혼자에 익숙해져있는 지금임에도 웃으며 승낙해버리는 것이고. 

 

"같이 살면 더 챙겨줘야 할 수도 있어서 불편할텐데 ."

 

"역시 다정하네요, 리완." 

 

참 신기한 일이지? 첫 인상은 7초면 결정난다는데,  당신은 늘 제게 좋은 사람이 되더라고요. 평생을 알더라도, 설령 본질을 알고 있어도 제게만큼은 옆을 내어주는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말거예요. 

그래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소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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